리좀적(rhizomatic) 사유의 특징
들뢰즈와 가타리는 서구의 사유 방식을 수목으로 모델 삼고, 수목적인 체계(수목적인 체계 : 모든 것을 사물의 본질이나, ‘근거(grund)', ‘원인(cause)'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사유로 서양의 '형이상학'이고, ‘근거 지움(grunden)’임. 위계적인 체계로서, 가식적인 형식을 통해 정의했던 서구의 전통적인 태도이고, 그 밑에 깔려 있는 기하학적인 사유방식.)는 초월성(transcendence)이라고 부르는 사유 체계와 결부되어 중심이 존재하며 유목적인 체계인 리좀과 대비되는 사유라고 설명하였다. 리좀은 어떤 것이 무엇과 관계하는가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고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유방식으로 내재적이고 유목적인 사유방식이다. 리좀적 사유는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접속되고 분기되는 줄기 식물처럼 특정한 사고의 기반 없이 다양한 것들의 차이와 복수성을 다원화하고 그것을 통해 새롭게 번식시킨다. 그것은 하나의 중심에 귀착하는 수목의 체계과 달리 뿌리도 없이 접속, 분화, 단절, 연결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인 유목적인 체계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적 사유의 특징을 접속의 원리, 이질성의 원리, 다양성의 원리, 비의미적 단절의 원리 ,지도그리기와 전사술의 원리로 설명하였다.
1) 접속의 원리
리좀은 ‘접속(connexion)의 원리’에 의해 정의 되고 만들어진다. 리좀은 줄기들이 어떤 지점이든 열려 있어서 다른 어떤 지점과도 접속 될 수 있고 접속한 줄기들이 한 점으로 통일되지 않으며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도 없다. 접속이란 A냐 B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어떤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접속이란 A와 B가 등위적으로 결합하여, A도 아니고 B도 아닌 제 3의 것인 C를 생성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원리에서는 접속되는 항이나 접속의 지점이 달라지면, 접속의 결과 만들어지는 것 전체가 달라진다. 접속의 원리에서 리좀은 모든 점이 열려있는 개방형이고 다양한 접속에 의해 어느 한 점으로 귀결하지 않는 수평적 평등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2) 이질성의 원리
리좀은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두 번째로 ‘이질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접속은 동질적인 것과의 결합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이질적인 것과 결합하여 새로운 이질적인 것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므로 접속을 원리로 하는 리좀은 이런 이질성의 원리를 포함한다. 이질성의 원리에 의해 어떤 한 가지 사유와 다양한 외부가 서로 접속되어 새로운 사유의 리좀적 증식이 가능하다. 리좀은 증식의 선을 제한하지 않고 차단하지 않으며 새로 만들어지는 이질적인 것의 내용과 질을 규제, 통제하지 않고 중심으로 통일시키지 않는다. 이질성의 원리에서 리좀은 어떠한 경우라도 다양한 종류의 이질적인 것과 연결 접속될 수 있어야 하기에 유연성과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3) 다양성의 원리
리좀의 세 번째 원리는 ‘다양성(다양체, multiplicite)의 원리’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양성 내지 다양체라는 개념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양성은 대상 안에서 주축 역할을 하는 통일성도 없고, 주체 안에서 나뉘는 통일성도 없다. 대상 안에서 유산되거나 주체 안으로 회귀하는 통일성도 없다. 다양성은 주체도 객체도 없고, 규정, 크기, 차원들만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양성의 본성이 변할 때에만 증가할 수 있다. 다양성은 차이 자체로 의미를 갖고,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으로 통일되거나 동일화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집합이며, 이질적인 연결, 접속에 의해 전체의 의미가 달라진다. 다양성은 끈임 없는 연결, 접속들에 의해 성질이 변화하는데, 배치(agencement)란 이러한 다양성 안에서 차원들이 늘어난 것이다. 배치는 하나의 사물이나 사실은 ‘그것이 다른 것과 어떻게 연결 되는가’, ‘그것이 다른 것과 어떻게 계열화 되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배치는 계열화와는 달리 어떤 개개의 항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연결된 전체를 포착하려는 개념이다. 배치는 이웃한 이질적인 것과의 접속을 통해서 또 다른 기계로 변화하여 새로운 것으로 창조될 수 있다. 배치는 어떤 항을 자기 안에 포섭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영토화’와 거기에서 벗어나는 ‘탈 영토화’로 다시 ‘재 영토화’로 작동한다. 따라서 리좀은 연결, 접속하는 수가 늘어나면 차원수가 증가하는 다양성으로 하나의 중심에 귀결된 수목적인 체계와는 반대인 수평적인 체계이다. 다양성은 수목적인 체계에서 하나의 중심을 제거하는 것, n-1의 상태를 고수함으로써 리좀적 체계가 될 수 있다. 다양성의 원리에서 리좀은 어떤 하나의 중심으로 포섭되거나 동일화되지 않는 개체 고유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갖고 이질적인 것과 다양하게 연결, 접속되어 성질의 변화를 하는 가변성이 있다.
4) 비의미적 단절의 원리
리좀의 다양체는 ‘비의미적인(asignifiante, 비기표적인)단절의 원리’를 특징으로 갖는다. 단절이란 선과 연을 끊는 것이고, 그 선과 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비의미적인 단절이란 어떤 주어진 선과의 관계를 끊고 그 선 안에서 만들어 지는 의미화의 계열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노다지’는 영어의 ‘노 터치(no touch)’에서 나온 말로, 외국인이 금광에서 금을 캐면 ‘건들지마!’라고 외치던 말인데, 영어를 모르던 한국 광부들은 그것을 ‘금은보화’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원래 의미와 상관없는 ‘노다지’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노다지’는 본래 영어의 의미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뜻으로 변형된 단절로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 다른 계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리좀은 어떤 곳에서든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을 따라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되므로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를 통해 끊임없이 ‘탈주(fuite)’한다. 즉 리좀은 어떤 근원적인 의미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채, 떼어내어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는 비의미적 단절의 원리인 리좀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존재의 비평행적 진화’라고 말했다. 비의미적 단절에 의한 리좀은 탈영토화와 탈주를 통해 규칙적으로 분화되고 갈라지는 선을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횡단하여 수목적 체계를 뒤흔들어서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는 리좀은 끊임없이 연결, 접속되고 다양해지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단절될 수 있다는 것으로, 외적인 의미화 계열에서 벗어나 탈영토화되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의미적인 단절의 원리에 의한 리좀은 연결, 접속되어 변화하여 새로운 창조가 되므로 가변성, 유동성이 있다.
5) 지도그리기와 전사술의 원리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은 ‘모상이 아니라 지도’라고 정의한다. ‘지도그리기와 전사술의 원리’는 모상과 복제, 재현과 재생산과 반대되는 것이다. 지도란 길을 찾거나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경로를 찾으려고 할 때 사용된다. 지도는 길의 형상과 지표면의 형상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행동의 도표로서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행동과 삶의 길, 방법이 접속되는 상태이고, 접속되고 분기되는 길의 위상학적 관계이며, 만나게 될 장애물이나 위험물의 표시일 것이다. 지도는 열려 있고,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 접속될 수 있다. 지도는 분해될 수 있고, 뒤집을 수 있으며, 끝없이 변형될 수 있다. 지도는 찢을 수 있고, 뒤집을 수 있고, 예술 작품처럼 착상해 낼 수도 있다. 지도가 언제나 개방되어있어 다양하게 연결, 접속될 수 있다는 것은 리좀과 일맥상통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지도 제작법을 알려주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지도를, 행동과 실천의 지도를 만들기를 원했다. 즉, 삶을 둘러싸고 그것을 포섭하는 거대한 선들,거기서 갈라져 나가는 유연한 분자적선들의 배치에 대해서 일종의 잠재적 지도를 그려주고, 거기서 벗어나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탈주선들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즉,지도 그리기와 전사술의 원리에 의한 지도나 리좀은 열려 있는 뿌리를 연결, 접속, 단절하여 새로운 것으로 탈영토화되는 탈주를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가변적이고 창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 그리기와 전사술의 원리에서 리좀은 새롭게 변화하고 창조하는 가변성과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1. 고전적 자유주의
흔히 자유방임주의라고 부르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18세기 중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프랑스의 중농학파들에 의해 처음 주장되었고, 후에 애덤 스미스에 의해 정리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1776)에서 개인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기구)'에 의해서만 경제활동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치안과 국방을 지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즉, 애덤 스미스는 국가를 소극적인 국가, 작은 국가, 야경국가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혁명 이후 시민들의 지위가 상승함에 따른 자유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에 따라 국가는 개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장점을 가져왔지만 그와 반대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형평성이 맞지 않는 폐해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1929년 미국에서 '대공항'이 일어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케인즈가 주장한 '수정자유주의'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케인즈의 수정자유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뉴딜정책을 펼쳤고, 이때부터 1970년대까지 케인즈의 경제이론이 여러 나라 경제정책의 모체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된다.
2. 신자유주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는 대공항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의 많은 선진국들이 케인즈의 경제학을 받아들였는데 그 요지는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통한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루는 것이다. 즉, 소극적인 국가, 야경국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국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정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석유파동, 스태그플레이션 등의 세계적인 불황과 함께 실패로 끝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 흔히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전적 자유주의와 수정자유주의와 MIX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하되, 국가가 약간의 개입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국가의 개입은 '준칙에 의한 최소한'이라는 조건을 달며,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효율성과 형평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보며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즉, (준칙에 의한)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통해 안정된 경제성장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공공복지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정부의 재정을 팽창시키고,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이른바 '복지병'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었고,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또한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 민영화이라는 말로도 압축할 수 있는데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도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개방의 압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따라 케인즈 이론에서의 완전고용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해체되고, 정부가 관장하거나 보조해오던 영역들이 민간에 이전되었다.
자유방임경제를 지향함으로써 비능률을 해소하고 경쟁시장의 효율성 및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불황과 실업, 그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시장개방 압력으로 인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 초래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cf) 레이거노믹스란? 레이거노믹스란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레이건에 의해 추진된 경제정책을 지칭하는 말이다. 경제의 재활성화를 통해 '힘에 의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기한다는 국가정책으로 그 내용은 세출의 삭감, 소득세의 대폭감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의 완화, 안정적인 금융정책으로 요약된다. |